이현우 전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제일기획 카피라이터/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현우 전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제일기획 카피라이터/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보길도는 신이 남겨둔 마지막 비경이었지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어요.

400여년전 고산 윤선도도 그렇지 않았겠어요?

폭염으로 숨막히는 서울을 탈출해 낚시장비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남쪽으로 무작정 달렸어요.

500킬로미터쯤을 내리 달려서 그곳에 당도했을 때

윤선도가 생각난 건 당연한 거 아니었을까요?

고산은 병자호란의 포화를 피해 스스로 귀양을 자처해서

제주도를 향해 남하를 거듭하다가 우연히 남해 고도에서

절경의 섬과 마주했다고 전해지잖아요.

보길도는 전라도 땅끝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황원포라는 포구에서

멀리보이는 외딴 섬이었지요.

이 섬의 어디메선가 구름에 연꽃을 포개놓은 듯한 비경에

그는 완전히 마음을 뺏겨버리고 말았지요.

강호에 연꽃이 떠있는 동네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부용동.

제주도로 향하던 발걸음은 거기서 머물러 버린 거지요.

섬길을 전세 낸 기분을 만끽하면서 보길도 곳곳을 드라이브 하는 동안

내 귓전에는 온통 ‘지국총 지국총’ 뱃머리의 마찰음이 떠나질 않았어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무릉도원을 발견하는 아이러니라니.

그 곳에서 그는 낙서재, 동천석실, 세연정 등을 지어놓고

사시사철 낚시를 즐기는 신선의 은둔생활을 하게 되는 거지요.

어부사시사는 이런 절세의 비경에서 길어올린 샘물같은 우리 문학의 보물이었지요.

윤선도는 건달이었을까요?

당시 정적들은 이런 시각으로 그를 폄훼하고 있었잖아요?

그렇게 사치와 호사를 일상으로 삼은 권력자의 도피행각이었을까요?

아무튼 보길도는 정쟁의 포화를 피해 잠시 대피하면서 얻어낸

또 하나의 오아시스에 틀림없었던 것 같아요.

노복과 여종의 시종을 받아가면서 자식, 손주들과 화락을 나누고

권태와 흥취를 구가하는 삶이 정녕 귀양살이였을까요?

윤선도 원림 세연정
윤선도 원림 세연정

필자미상의 ‘가장유사’라는 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오네요.

부용동에 있을 적에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나 경옥주 한잔을 마시고 자제들에게 강(講)을 했다.

조반을 먹은 후에는 사륜마차에 올라타 악기를 수행시킨 다음 동천석실에 가서 놀았다.

때때로 홀로 죽장을 짚고 노래하거나 날씨가 좋으면 반드시 세연정에 올랐다.

이땐 노비들에게 술과 안주를 충분히 준비시켜 사람들을 작은 수레에 싣고 그 뒤를 따랐다.

곁에 자제를 시종케 하고 어여쁜 계집아이들을 줄을 짓게 했다.

작은 배를 연못 위에 띄우고 동남녀들의 찬란한 채복의 자태가

수면에 비치는 것을 보면서 어부사시사를 유연히 노래케 하였다.

보길도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 모든 것이 구비된 신선의 땅이었지요.

무엇 하나 아쉬움이 없이 사치와 향락이 보장된 권력자의 왕국이었지요.

주군에게 버림받고 귀양길에 오른 폐족의 식읍치고

동서고금을 통털어 이만한 은신처가 또 있었을까요?

고산은 결코 소박하고 담백한 전원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조선조 사대부들 가운데 이만한 풍류와 호사를 누린 사람이 또 있었나요?

안빈낙도, 고고청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 같네요.

대지주 출신답게 보길도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에 젖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작품 도처에 배어 나오지 않나요?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퍼포먼스에도 능란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감정의 흥취를 절제하기보다는 멋지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출하는데 익숙한 엔터테이너라고나 할까요?

보길도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올려라 닻 올려라

넓고 맑은 물에서 마음껏 놀아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인간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구나

봄・여름・가을・겨울로 매 계절마다 10수씩 총 40수로 구성되어있는 어부사시사.

고산이 65세에 보길도에 들어가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전해지는 어부의 노래 중에서 최고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을 두고

착잡한 느낌이 들끓는 건 감정의 과잉일까요?

이 가사는 진짜 ‘어부’의 노래일까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어부들의 삶이 어떠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이런 의심은 당연한 거 아닐지요.

어부에게 바다는 무엇일까요? 놀이와 여유, 흥취와는 반대 지점에 있는 공간 아닐까요?

현실의 바다는 생존의 장이자 대결의 무대이며 죽음의 공간이기조차 할 겁니다.

그런데 어부사시사 어느 대목에서 그런 삭막한 삶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지요?

심하게 질러 보겠습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가짜’ 어부의 노래에 다름 아니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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