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 언덕길, 내리막길을 굽이굽이 달리면 하체근력 증진, 심폐지구력 강화는 기본이다. 거기에다 라이딩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인생여정과도 흡사해 참선 같은 마음수양 효과를 안장위에서 한껏 느끼게 된다.
 

©최성하
©최성하

산업용 펌프를 수입, 판매하는 최성하(69·다이나백코리아 대표이사) 씨는 16년 전 우연히 애완견을 기르게 됐다. 귀엽게 생긴데다 퇴근 후 귀가하면 꼬리를 살살 흔드는 게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래서 이름을 3번째 자녀라는 뜻으로 ‘세찌’라고 지었다. 산책도 같이 다니고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하고, 정말 자식같이 키웠다.

그런데 세찌가 열네 살이 되던 2년 전 봄, 노화 탓인지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찌를 잃은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심한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잠시 받기도 했다. 아내의 걱정도 컸다.
 

애완견 저 세상 보낸 뒤 우울증 이기려 페달 밟아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시름에 잠겨 지내던 2020년 가을 어느 날, 동네(서울 개포동) 자전거 가게 앞을 지나다 문득 자전거타기로 우울증을 이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 중 100만 원 짜리 국산 자전거 한대를 즉석 구입, 기본적인 액세서리를 부착해 집으로 타고오니 아내가 의아한 눈길로 봤다. “저러다 몇 번이나 탈런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복장, 신발은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 양재천과 탄천, 한강 자전거길을 비교적 한적한 주중에 달리며 체력을 키워나갔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의 왕성한 기운! 등산, 마라톤과는 또 다른 환희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서울 근교 자전거길 라이딩을 계속하던 중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의 ‘국토종주 자전거길 인증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왕 시작한 거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지인 2명과도 의기투합이 됐다.

전국의 자전거 길을 달리다 보면 사고 위험도 있고, 외로움과 힘겨움을 이겨내자면 혼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2∼3명과 함께 달리는 건 필수였다.

드디어, 지난해 1월 한강 자전거길 광나루 종주길 인증을 시작으로 10개월만인 11월 11일 제주도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인증을 완료함으로써 1,853㎞에 이르는 대망의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제주도 용두암 인증센터 앞에서 ©최성하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제주도 용두암 인증센터 앞에서 ©최성하

첫 인증 스탬프 찍은 뒤 10개월 만에 그랜드슬램 달성

돌이켜보면, 그 힘든 전국 완주를 어떻게 해냈는지 실감이 안난다. 2021년 1월 15일, 첫 인증스탬프를 광나루 인증센터에서 구입한 종주수첩에 찍으면서 추위가 오기 전인 12월 이전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겠다고 결심했다. 계절, 구간별 난이도, 라이딩 거리 등을 고려해 총 12개 구간의 종주 마스트 일정표를 작성, 비교적 쉬운 구간부터 매달 2~3개의 구간을 계획했다.

구간별 세부일정은 3~4주전 작성해 교통편, 숙소예약을 했다. 일기예보를 수시로 모니터링 하면서 날씨조건이 변하면 출발 일정을 조정하고 교통, 숙소예약을 변경했다. 특히 비 예보일 때 일정조정은 불가피했다. 종주 라이딩 도중 예보와 다르게 날씨가 변해 비가 내리는 경우도 가끔 발생했으나 이럴 땐 당일 일정을 달성하기 위해 비옷을 입고 강행군을 했다.

7, 8월은 장맛비, 작열하는 태양과 무더위 때문에 봄, 가을보다 2~3배 체력이 소모됐다. 수시로 식수를 보급하면서 달려야 했다. 7월에 완주한 충북 오천구간은 35℃를 웃도는 무더위에 식수가 바닥이나 일행 중 한사람은 탈진, 마을 공동화장실 물을 마시기도 했는데 다행히 건강상 문제는 없었다.
 

근력-심폐력 강화, 자전거는 ‘100세 장수 시대’의 최고 도우미

여름철 기습 장대비와 천둥, 번개가 치면 “하느님!”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리 밑이나 마을 정자로 긴급 피신을 해야 하나 여의치 못할 경우엔 계속 라이딩 하면서 피신처를 찾아야 했다. 담양댐 가는 도중에 만난 집중 폭우 때는 스마트폰에 물이 스며들어 내비게이션을 볼 수 없었다. 인증센터를 지나치는 바람에 비 그친 후 왔던 길을 5㎞ 가량 되돌아가 인증스탬프를 찍느라 체력이 완전 고갈된 적도 있었다.

‘자전거 국토종주’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 짜릿한 성취욕은 무엇에도 비할 바 없었다. 또 자전거 달리기는 모든 이들의 소원인 ‘100세 장수’를 완성시키는 최고의 도우미라는 생각에 열심히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코스의 자전거길이 잘 마련돼 있어 자동차나 도보로는 접근하지 못하던 국토의 속살을 보는 ‘눈 호강’이 최고 장점이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새롭고 다채로운 경관을 즐기다 보면 ‘만점 힐링’ 그 자체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평지, 언덕길, 내리막길을 굽이굽이 달리면 하체근력 증진, 심폐지구력 강화는 기본이다. 거기에다 자전거 달리기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인생여정과도 흡사해 참선이나 기도와 같은 마음수양 효과를 안장위에서 한껏 느끼게 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므로 구간 곳곳에 위치한 맛집에서 다양한 지역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자전거 라이딩의 매력이다.

마음만 먹으면 초보자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게 자전거 라이딩의 특징이다. 물론 국토 종주에 도전하려면 2~3개월의 상하체 근육 단련은 꼭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자전거와 용품을 구입하면 첫 번째 구간에 진입한 거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비싼 외제 자전거를 살 필요는 없다. 100만원 정도하는 국산품으로 시작하면 된다. 각종 용품 구입비, 이동 교통비와 숙박비를 포함해도 골프는 물론, 헬스 클럽 이용보다도 더 저렴하다. 비대면 코로나 시대의 최고 옥외 스포츠인 자전거 국토종주, 한번쯤 도전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이란?

아라서해갑문∼낙동강하굿둑 구간 종주, 4대강 종주, 제주환상종주·동해안종주 등 12개 구간별 종주 등 1,853㎞를 모두 완주한 라이더에게 주는 인증제다. 여권처럼 생긴 인정수첩에 구간별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종주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인증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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