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성차별에 온 몸으로 맞섰던 ‘테니스 여제’ 빌리 진 킹

빌리 진 킹 포스터
빌리 진 킹 포스터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성평등 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1972년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MS)>가 창간되고, 닉슨 대통령은 남녀교육평등법에 서명한다. 또 1973년 미연방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성차별 철폐를 외치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가던 그 무렵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1973년 9월 20일, ‘테니스 여제’ 빌리 진 킹(당시 29세)과 전 남자 윔블던 챔피언 바비 릭스(당시 55세)가 펼친 세기의 성 대결이었다. TV로 중계된 이 경기를 지켜본 전 세계 시청자는 9,000만 명으로. 1969년 달 착륙 중계 이후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2017년도에 개봉된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이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킹 역에 영화 <라라랜드>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엠마 스톤이, 릭스 역엔 헐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스티브 카렐이 열연했다.

 

성 대결을 펼친 빌리진 킹(오른쪽)과 연인인 마릴린. 킹에겐 성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다 ©영화스틸컷
성 대결을 펼친 빌리진 킹(오른쪽)과 연인인 마릴린. 킹에겐 성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다 ©영화스틸컷

1973년 당시 일반적인 프로 테니스 대회의 경우 남자단식 우승자에게는 1만2,000달러, 여자 단식 우승자에게는 8분의 1에 불과한 1,500 달러가 수여됐다. 킹은 협회 관계자에게 남녀 결승전 티켓이 비슷하게 팔렸는데, 남자 상금이 여자보다 8배나 많은 이유를 따져 묻는다. 급여의 남녀 차별이 여전한 현재도 유효한 질문이다. “남자가 가정을 부양한다”거나 “남자 경기가 더 빠르고 재밌다”는 관계자의 해명은 그저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추한 모습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후 킹은 스포츠계에 만연했던 남성 우월주의에 맞서 여자테니스협회(WTA)와 여자스포츠연맹(WSF)을 설립하며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에 앞장선다.
영화는 성 대결 뿐만 아닌 킹의 성 정체성과 관련된 갈등도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유부녀였던 킹은 미용사인 마릴린(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분)에게 매혹되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킹은 성대결에서는 승리하지만 마릴린을 사랑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영화의 끝에 킹은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났다고 하는 자막이 나온다.
엠마 스톤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신체적으로 가장 고단했다”고 한다. 우선 스톤은 7㎏를 찌워 운동선수의 탄력 있는 몸으로 바꿨고, 테니스 경험이 없던 탓에 3개월간 체력 단련과 테니스 연습을 병행했다. 킹과 릭스가 랠리를 길게 주고받는 장면엔 프로선수로 대역을 썼다.
스톤은 실존 인물인 킹을 연기하기 위해 과거 영상을 보며 목소리, 말투, 걸음걸이 등을 연습했고, 신념, 인간관계, 가족사, 그가 짊어졌던 당시의 압박감까지 연구했다고 한다.

릭스는 실제로는 킹을 테니스 선수로서 존경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로 지냈다. 킹이 싸운 대상은 남성 우월주의자인 릭스라는 한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회 전반의 그릇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릭스가 1995년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 중 한 명이 킹이었다고 한다.
 

1973년 테니스 성대결을 2017년 영화로 소환한 데는 아직도 이 사회에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함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여주인공 역을 맡은 스톤은 평소 성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배우여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스톤은 2017년 헐리우드 여성 배우 중 가장 높은 출연료 294억 원을 받고 있지만 남성 배우 1위인 마크 월버그의 770억원에 비하면 고작 3분의 1 수준이다.
이 영화는 또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상원의원이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란 분위기 속에 흥행을 기대하고 제작됐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기대가 어긋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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